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리더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Greek-Roman 문화권에서의 household leadership을 이해해야 한다. 왜냐하면, 초기 기독교 공동체는 가정을 중심으로 모였던 가정 교회였으며 (아마도 현재의 중국과 마찬가지로) 이 가정 교회의 리더는 그 모임이 열리는 가정의 household manager 였기 때문이다. 가정의 "안방마님"이 교회의 리더 역할을 했기에, "안방 마님"의 역할이 그대로 교회의 리더 역할에 반영되었다고 할 수 있다 (and vice versa).
오늘날 교회의 리더는 사회의 리더가 되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사회의 리더가 교회의 리더가 되어야 한다는 데에는 별 이견이 없을 것이다. 아니 좀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사회의 리더가 아니더라도 사회에서 요구하는 리더쉽을 갖춘 사람이어야 한다.
신약 성경 디모데 전서 3장에 설명되어 있는 감독의 자격이라는 것이 사실 "리더쉽의 조건"과 다른 것이 아니다. 디모데 전서에서 말하는 리더쉽의 조건은 sophrosyne (self-control), kosmion(sense of order), 그리고 epeikei(sense of appropriateness)이다. 이러한 조건들은 당시 고대 그리스-로마 문화권에서 가정의 모든 운영을 책임지고 있었던 household manager에게 요구되는 virtue 들이었다.
그러면 오늘날 21세기 미국 이민 사회에서 요구되는 church leadership은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 분명 성경의 증언대로, 그리고 교단의 헌번이 제시하고 있는 바와 같이 디모데 전서 3장에서 요구하고 있는 자격 조건들은 그대로 유효하다. 그 외에 실제적인 요소들을 더 제시하라고 한다면 정직, 성실, 겸손, 순종을 가장 중요한 요소들로 제시할 수 있지 않을까?
정직, 성실, 겸손, 순종 등 4가지 요소들은 예나 지금이나 교회 안에서 뿐만 아이라 교회 밖에서도 요구하는, 소위 "사람됨"의 척도로 삼는 도구들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대 사회는 표면적으로 이러한 요소들을 더 이상요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꿩잡는 것이 매"가 되어 버린 현실 사회의 모습이 그래도 교회에 들어와서는 "큰 교회 담임 목회자가 훌륭한 목회자"가 되어 버린 느낌이다. 정직, 성실, 겸손, 순종 이들 4가지 없이 하나님 앞에 사람 앞에 부끄러움 없이 목회를 할 수 있을까? 이러한 문제 의식이 없이 목회하고 있기에 교회 밖의 사람들로부터 4가지 없는 것들... 이라고 지탄을 받는지도 모르겠다.
토요일, 10월 10, 2009
수요일, 10월 07, 2009
영화 "Luther" 보고나서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고린도전서 13장 11절)
어린아이와 장성한 사람; 율법과 복음; 본질과 비본질...
마틴루터가 비텐베르크에 가서 신학공부를 시작하고 또 후에 강의를 하면서 발견하였던 그 복음의 내용은 면죄부 판매라는 당시 교회의 관행과 충돌하였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사랑의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신 성자 하나님이시다. 그 성자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에 우리는 죄로부터 그리고 죄책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은혜를 누리게 된다.
심지어 죄를 지억으니 지옥에 떨어져야 마땅하다며 사람을 속이는 악마의 간계에 대해서도 지옥에 가더라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라면 갈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담대함이 믿음일 것이다.
그것이 어쩌면 장성한 사람의 생각이 아닐까? 더 이상 좋은 상태를 생각할 수 없는 최고의 안식처나 유토피아로서의 천국이 아니라, 나를 사랑하시고 내가 사랑하는 하나님과 함께 있는 곳이 천국이라는 확신이 장성한 사람의 믿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장미빛과 핏빛은 사실 같은 색인데...
어떤 어른들이 보기에 핏빛인 그 색깔을 어떤 어린아이들은 장미빛으로만 보고 싶어한다.
어린아이와 장성한 사람; 율법과 복음; 본질과 비본질...
마틴루터가 비텐베르크에 가서 신학공부를 시작하고 또 후에 강의를 하면서 발견하였던 그 복음의 내용은 면죄부 판매라는 당시 교회의 관행과 충돌하였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사랑의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신 성자 하나님이시다. 그 성자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에 우리는 죄로부터 그리고 죄책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은혜를 누리게 된다.
심지어 죄를 지억으니 지옥에 떨어져야 마땅하다며 사람을 속이는 악마의 간계에 대해서도 지옥에 가더라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라면 갈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담대함이 믿음일 것이다.
그것이 어쩌면 장성한 사람의 생각이 아닐까? 더 이상 좋은 상태를 생각할 수 없는 최고의 안식처나 유토피아로서의 천국이 아니라, 나를 사랑하시고 내가 사랑하는 하나님과 함께 있는 곳이 천국이라는 확신이 장성한 사람의 믿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장미빛과 핏빛은 사실 같은 색인데...
어떤 어른들이 보기에 핏빛인 그 색깔을 어떤 어린아이들은 장미빛으로만 보고 싶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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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2일 주일 설교 “고난의 의미를 발견하는 지혜”
카리타스나인 영성사연구소 7 월 12 일 주일 설교 “ 고난의 의미를 발견하는 지혜 ” 욥기 42:1-9 오늘도 예배의 자리에 모이신 여러분 한 분 한 분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지난 주까지 역사서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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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lo : Hel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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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타스나인 영성사연구소 오늘도 예배의 자리에 모이신 여러분 한분 한분을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하며 축복합니다 . 오늘은 순서에 따라서 역대하의 내용을 살펴봅니다 . 역대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제국의 통제 하에 있었던 시기에 쓰여진 책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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